삼국유사 권2의 역사와 배경

이 시기는 고려 왕조가 막을 내리고 조선이 건국되면서 유교를 국시로 삼던 때였지만, 아직 불교 문화의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왕실과 사찰에서도 불교 관련 전적의 간행이 계속 이루어졌고, 이러한 과정에서 ‘삼국유사’도 여러 차례 중간되었습니다. 2002년 10월 19일 보물로 지정될 당시 소유자는 조씨(조***) 가문으로 기록되어 있어, 사대부 집안에서 오랫동안 전래되어 온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분류상 ‘기록유산 > 전적류’에 속하며, 1권 1책이라는 비교적 적은 분량임에도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삼국유사’ 자체는 ‘삼국사기’와 함께 우리 고대사의 두 기둥으로 평가받습니다. 특히 권2는 ‘기이(紀異)’ 편으로, 단군 신화를 비롯하여 가락국 건국 설화, 구지가(龜旨歌), 선도산 성모 이야기 등 신비로운 역사 전승을 집대성하고 있습니다. 조선 초기 유학자들은 ‘삼국사기’를 정사로 높이 평가한 반면 ‘삼국유사’는 불교적 색채가 강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겼지만, 오늘날에는 고대인의 세계관과 신앙을 이해하는 데 빠뜨릴 수 없는 자료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삼국유사 권2의 건축적·예술적 특징
구조와 양식#
이 책은 선장본(線裝本) 방식으로 장정되었으며, 5침(五針)의 홍사(紅絲)로 묶여 있습니다. 선장은 종이를 한 장씩 접어 책등 쪽에 실로 꿰매는 전통 방식으로,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까지 널리 사용된 양식입니다. 특히 홍사는 적색 염색한 실을 말하는데, 이는 상급 서적에 주로 사용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표지는 후대에 개장(改裝)된 것으로 만자(卍字) 문양이 찍혀 있어 불교 전적임을 직접적으로 드러냅니다. 전체 49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이 중 17~20장의 4장은 원본이 훼손되어 영인(影印)으로 보완하였습니다.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며, 책의 크기나 지질도 당시의 전형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앞 표지 이면 중앙에는 “황마중양월매득 니산남씨가장(黃馬仲陽月買得 尼山南氏家藏)”이라는 묵서(墨書)가 있습니다. 이는 ‘무오년(戊午年) 2월에 남씨(南氏)가 구입하여 니산(尼山) 남씨 집안에서 소장한다’는 기록으로, 책의 유래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그 옆에 “황마이양월매득 개일장(黃馬二陽月買得 改日粧)”이라는 부기가 있어, 같은 시기에 구입한 후 개장하였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뒤 표지 이면에는 “니산장(尼山藏)”이라 적혀 있어, 이 책이 오랫동안 니산 남씨 가문에 전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형태적으로 주목할 점은 정덕본(正德本)과의 차이입니다. 정덕본은 중국 명나라 정덕 연간(1506~1521)의 간행본을 가리키는데, 이 권2는 정덕본과 비교하여 광곽(匡郭, 본문을 감싸는 사각 테두리)의 길이가 대체로 1cm 이상 깁니다. 또한 변란(邊欄, 광곽의 선)의 경우 정덕본은 쌍변(雙邊, 두 줄)과 단변(單邊, 한 줄)이 혼재되어 있지만, 이 권2는 모든 장이 쌍변으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내용 면에서는 고려 왕들의 이름자를 피해 쓰는 벽휘(避諱)가 적용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간행되었음을 뒷받침합니다. 이러한 차이는 정덕본의 오류를 바로잡는 교정 자료로서 가치를 지닙니다.
역사적 의의와 현재 상태#
‘삼국유사’는 고대사의 기록이 부족한 상황에서 ‘삼국사기’를 보완하는 독보적인 역할을 합니다. 특히 권수(卷首)에 실린 왕력(王曆) 연표와 기이편의 설화들은 후대 역사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권2가 조선 초기에 간행된 점은 고려 말의 원형을 일부 반영하면서도 조선 초기 인쇄술과 서지학의 발전상을 보여줍니다. 같은 보물로 지정된 ‘삼국유사 권3~5(제419-4호)’ 등 다른 권들과 비교할 때, 이 권2는 잔본임에도 불구하고 간행 시기가 빠르고 묵서 기록이 풍부하여 더욱 귀중하게 평가됩니다.
보존 상태는 전반적으로 양호하나, 4장이 영인본으로 대체된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현재 서울 중구에 소재한 기관에서 보관 중이며, 고문서를 보존하기 위한 항온·항습 환경에서 관리되고 있습니다. 종이의 산성화나 변색을 막기 위한 정기적인 점검과 복원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일반인에게 직접 공개되기보다는 연구 목적으로 열람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 접하기는 쉽지 않은 유산입니다.
방문 안내
이 문화유산은 서울특별시 중구에 위치한 기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중구는 서울의 도심부에 해당하며, 종로구와 인접한 역사·문화의 중심지입니다. 좌표(126.9979403, 37.5640907)로 보아 덕수궁이나 시청 주변 인근으로 짐작됩니다. 도보로 이동하기 편리한 지역이며, 주변에는 여러 문화시설이 밀집해 있습니다. 다만 이 책은 전적류로서 상시 전시되기보다는 특별전이나 대여 전시 형태로만 공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방문 전에 해당 소장 기관의 공식 사이트에서 전시 일정과 관람 가능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시는 게 좋습니다.
서울 중구는 지하철 1·2호선 시청역, 5호선 광화문역 등 여러 노선이 교차하는 교통 요충지입니다. 버스 노선도 다양하게 연결되어 있어 접근성이 높습니다. 관람 시에는 촬영 금지, 플래시 사용 금지 등 소장 기관의 규정을 준수해야 하며, 특히 귀중 고문서의 경우 보존을 위해 조명이나 습도에 민감하므로 안내에 따라야 합니다. 도서관이나 박물관 내부에 보관되어 있는 경우 사전 예약제로 운영될 수 있으니 이 점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주변에는 덕수궁, 서울시립미술관, 청계천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으므로, 관람 후 주변 역사 문화를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 권2의 가치와 의미
‘삼국유사 권2’는 보물 지정을 통해 국가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보물은 국보 다음 등급이지만, 전적류의 경우 원본의 희소성과 학술적 중요성 때문에 많은 사료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삼국유사 전체 중에서도 기이편의 핵심 권차로서, 단군 신화, 가락국 건국 이야기, 구지가 등 한국 고대사의 출발점이 되는 서사들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구지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민요로, 그 원문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출처가 바로 이 책입니다. 네이버 블로그 참고 정보에서도 “구지가를 만났을 때의 전율”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원전을 직접 대면하는 경험은 독자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학술적으로는 정덕본과의 차이를 통해 조선 초기 서지학과 판본 연구에 중요한 기준을 제공합니다. 먼저 만들어진 판본이 나중에 필사·간행된 정덕본의 오류를 바로잡아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려 왕실의 벽휘가 적용되지 않은 점은 당시 역사적 상황을 재구성하는 단서가 됩니다. 분류상 기록유산 전적류에 속하며, 2002년 10월 19일 지정 당시 1권 1책이라는 소량임에도 불구하고 그 중요성은 한 권의 책을 넘어섭니다.
한국 문화유산의 전체 지형에서 ‘삼국유사 권2’는 ‘삼국사기’와 쌍벽을 이루는 고대사 사료의 정수입니다. 건조한 연대기인 ‘삼국사기’가 놓친 신화·전설·민간 신앙의 영역을 보충해 주어, 우리 민족의 정신적 뿌리를 더욱 풍부하게 조명합니다. 이 책은 단순한 종이 위의 글자가 아니라, 천 년이 넘는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살아 있는 역사의 한 조각입니다. 앞으로도 체계적인 보존과 연구가 이루어져 후대에 온전히 전승되기를 바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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